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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과 가까운 뉴욕의 낙서화가 - 키스해링

SuJae | 2008/06/26 17:09



Keith Haring & 22nd Street
Fen Branklin

뉴욕 구석구석에 그려져 있는 낙서들. 나에게 있어 낙서는 공중화장실에 그려져 있는 음란한 그림을 뜻하지만 이곳 뉴욕의 낙서는 상상초월, 예술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수준 높다. (사실 이미 예술로 분류되고 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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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뉴욕 구석구석에 수많은 낙서화가들이 경찰의 눈을 피해 그림을 그리고 있다. 그래피티는 불법이기 때문에... 개중에는 정식 의뢰를 받고 작업하는 화가들도 적지 않다.

그래피티 아트는 1960년대 미국의 빈민가 아이들이 색색이 스프레이를 들고 벽에 낙서를 하면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젊은이들 사이에서는 선풍적인 인기를 몰고 왔으며 뉴욕에서 가장 이름을 날린 Graffiti 아티스트 중 하나는 바로 키스해링(Keith Haring)이다.

특별히 키스해링을 지목한 이유는 얼마전 LG에서 나온 신형 핸드폰 사이언 비키니폰에 키스해링의 이미지가 삽입되어 그의 작품이 한국인과 친숙해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비키니폰이 많이 팔렸다는 전제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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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 비키니폰에 삽입되어 있는 월페이퍼

미국출생. 처음에는 단순한 그래피티 아티스트로서 주목 받았으나 1980년초부터 뉴욕 지하철 광고판을 캔버스로 이용하여 쾌활한 코믹 이미지와 정치적인 메시지를 전달했다. 1978년 뉴욕 School of Visual Arts에서 수학했고 펑크와 랩뮤직, 브레이크댄스와 그래피티로 특징지워지는 East Village에 있는 클럽들에서 “개인감정의 공공에 대한 표출”이라는 영감을 받았다. 스피드와 명료함 그리고 간결한 선으로 자신의 에너지를 표출했고, 대담한 컬러로 그래픽 디지인에 대한 그의 관심을 보여주었다. 상업적으로도 뛰어난 감각을 보여 뉴욕과 마이애미에 아트숍을 오픈하여 성공하기도 했다. 1985년부터 에이즈(AIDS)의 합병증으로 사망하는 1990년까지 하링은 그의 에너지를 에이즈의 위험을 알리는데 집중하였다. - Artwi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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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그림은 예술에 문외한인 나같은 사람이 보더라도 쉽게 느낄 수 있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특히 많은 작품들이 Untitled로 많은 사람들이 느끼는대로 생각하게 만들어 메시지를 제한하지 않는다. 간단 명료하면서도 강렬한 색체를 가진 그의 작품은 그가 죽은지 17년이 지난 지금에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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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작품을 통해 AIDS확산방지, 동성애자 인권운동, 환경운동 등 많은 사회적 이슈에 관여를 했으며 1990년 AIDS 합병증으로 32살 생을 마감, 현재는 키스해링재단 수익금을 통해 AIDS환자를 돕고 있다. <년도별 작품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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