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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복희 칼럼] 마음의 고향

떠날 때는 애국자인양 유학을 마치고 한국으로 금의환향할 것 같던 아들이 미국 학위를 마치고도 돌아올 생각이 없었다. 모교에선 아들에게 “학위 논문을 속히 보내라”고 독촉하기에, 우리는 아들이 바로 교수로 채용되는 줄 알고 남편 방학 기간에 미국으로 날아갔다. 그런데 외며느리는 귀국이 싫었나보다. 우리 부부에게 “서울 가면 집 사주실거에요? 자가용 사주실거에요?”라며 정색을 하고 묻는다. 고생하며 지낸 유학생활 10년새, 아들도 며느리도 많이 변한 것 같다. “우리 젊을 때는 셋방에서 시작했다”라는 말이 목에 걸렸다.

귀국을 종용하러 왔다가 돈만 내밀고 힘없이 비행기를 탄 우리 부부는 서로 고개를 돌린채 소리없이 흐느꼈다. 그때부터 나는 아들보고 싶은 마음을 접고 20년을 견디며 살았다. 그러나 남편도 나도 언젠가는 아들 옆에 살고싶은 마음을 숨기고 살아왔다. 아들 유학보낸 것을 서로 탓하며 원망하고 부부싸움을 많이 했다. 집안이 화목하지 못하니 의욕도 상실돼, 그때쯤 TV 방송출연도 싫증나기 시작했다.

연극배우인 나는 20년을 TV 방송을 해도 그 분위기를 타지못하고, 마음의 고향인 연극 무대만 그리워하고 있었다. 무대가 그리워 연극을 하면 나는 탤런트로 인정받기 싫었다. 연극만 하던 시절엔 어느 탤런트가 찬조출연하면서 시간을 못지키고 연습에 충실하지 않는 모습이 불만스러웠다. 그래서 나는 연극을 하는 3개월간은 방송출연을 하지않고, 출혈을 감수하며 국립극장에서 공연했다.

남편이 퇴직하자 나는 방송을 접고, 아들이 사는 미국으로 이민가기로 결심을 하였다. “한국말 못해요”라며 할머니·할아버지 전화도 거부하는 손자들이지만, 너무 그리워 “이렇게 지낼수는 없다”는 생각으로 꼭 미국에 가고 싶었다. 남편은 젊은 시절 미국유학을 했었다. 그래서 미국생활에 거부감이 없기에 납득시키기 어렵지 않았다. “미국가면 아들과 손자 들을 쉽게 볼 수 있다”는 내 말에 “가겠다”고 약속을 했다가도, 다음날은 “이 나이에 무슨 이민이냐”며 안 간다고 했다. 또 남편이 결심을 하면 내 마음이 망설여져서 “갈 것이냐 말 것이냐” “왜 누가 유학을 보냈는가”하며 정이 다 떨어지도록 맹렬히 부부싸움했다.



몇달 후 지치도록 탈진한 상태에서 이민 수속은 끝나고, 비자 인터뷰를 하기도 전에 마음변할 것이 두려워 편도 항공권을 2장 샀다. 아무래도 아들집 곁으로 가는 것은 잘 하는 일이 아닌 것 같다. 이민 수속을 하면서 후보지를 물색하느라, 혼자 한달간 친구들의 집을 찾아다니며 사전답사를 했다. 그 중에서 애틀랜타가 기후도 좋고 조용하고 문화의 도시라는 점에서 마음이 끌렸다. 그리고 남편이 좋아하던 나의 연극 후배 목사님이 애틀랜타에 살고 있어 남편이 더 좋아할 것 같았다. ‘20년을 떨어져 살다가 과연 화목하게 지낼 수 있을까’ 고심 끝에 이주공사에 연락하여 떠난 짐을 애틀랜타로 돌리게 하였다. 비자를 받자마자 서울을 등지고 용감하게 훌훌 떠났다. 이민을 갔다가도 돌아올 내 나이 70살에….

3년 전 남편이 애틀랜타에서 세상을 떠난후 가족같던 목사님도 이곳을 떠나 서울에서 활동하며 지낸다. “교수님도 떠나시고 안계신데, 김선생님 혼자 두고 와서 미안합니다”라는 전화를 받으면 눈물이 하염없이 흐른다. 동료들 말대로, 한국에 방송국이 많이 생겼으니 다시 가서 방송을 할까도 싶다. 연극도 하면서…. 그러나 나이가 있어 곧 한계가 올 것이고, 후회할 것이 뻔해서 귀국할 용기가 안 난다.

요즘은 방송에서 내가 좋아하는 시 낭송도 하고, 매주 한번 시니어 합창단에서 노래하고, 매달 한번 애틀랜타문학회에 참여하여 좋은 분들과 글공부도 한다. 그렇게 잠시 휘청거린 마음을 잘 다스리고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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