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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자 칼럼] 미국의 학교는 전쟁터인가

한 시인이 밤늦게 서재에서 기도문을 쓰고 있다가, 누군가의 죽음을 알리는 조종 소리를 들었다. 그는 시동을 불러 누가 죽었는지를 알아보도록 시켰다. 잠시후 그는 다시 시동을 불러 “누가 죽었는지 알아볼 필요가 없다”고 말한 후, 한편의 시를 썼는데 바로 ‘누구를 위하여 종이 울리나’이다.

‘세상의 그 누구도 외딴 섬은 아니다’로 시작한 이 시는 ‘누구의 죽음이든/나의 일부를 소멸 시키니/그것은 나의 일부의 죽음이다’라는 내용을 담고 있다. 한줌의 흙이 파도에 씻겨가면, 그만큼 대륙의 영토가 상실된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그렇기에 종소리는 단지 죽은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살아있는 모든 사람을 위한 종소리라고 우리에게 일깨워준다.

지난 1일 오리건주 엄프콰 칼리지에서 대형 총기난사 사건이 발생해 10여명의 우리 아이들이 생명을 잃었다. 왜 우리 아이들이 꿈많은 교정에서 총에 맞아 죽어야 하는가. 매달 일어나는 총기 사건에 얼마나 많은 부모와 자녀들이 가슴찢는 아픔을 겪는지 모른다. 신성한 학교 교정에서 마치 장난감처럼 총을 갖고 다닐수 있는 나라는 이제 미국 이외엔 없다. 이제 전쟁터를 불사하는 학교에 우리 아이들을 보내기가 겁난다. 생명에 위협을 느끼면서까지 학문을 연마해야 하는가. 교육의 정체성이 송두리째 흔들린다.

우리 한인들도 조승희가 저지른 버지니아텍 총기난사 사건을 기억할 것이다. 이제 한인 이민자들도 학교내 총기사건이 더 이상 남의 일이 아니다. 법이나 정부는 국민의 생명을 보호하고 인권을 위해 존재한다 그런데 의회에서 법을 다루는 사람들은 누구의 눈치를 보길래, 우리 아이들의 위기를 무시한채 ‘총기 규제법’을 통과시키지 못하는가. 나같은 촌부는 이해할수 없지만, 부모의 한 사람으로서 죄없는 우리 아이들을 위해 이제 나설 때이다. ‘총기규제’(Gun Control)는 법을 뛰어넘어, 학부모의 손을 넘어, 온국민이 나서야 한다.



대학은 인생의 참뜻을 찾는 인생의 가장 고결하고 멋진 생의 순간이다. 그러나 수많은 요인으로 인해 어둠속을 헤매는 상처받은 영혼들도 많다. 인생길에는 누구나 깊은 어둠의 겨울을 지난다. 인생이란 그리 쉽지않음을 수많은 시행착오를 통해서 배우고, 어둠속에 헤매는 젊음을 빛으로 끌어내는데 한생이 걸린다. 그래서 대학 캠퍼스는 생의 가장 중요한 빛의 터널이요, 용광로다. 그래서 대학을 큰 학문이요, 참 빛을 찿아가는 ‘명명학’이라 한다.

이런 젊은이에게 누구나 총을 소유할수 있도록 하는 나라는 미국 뿐이다. 생명을 다치게하는 무기, 총기에는 생명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다. 누군들 화가 나면 그 순간 무슨 일을 못하겠는가? 피끓는 젊은이, 인생길 세상을 알기에는 너무 어린 그들에게 총기는 위험천만이다.

자유의 나라 미국에서, 자유란 누구나 누릴수있는 흔한 말이 아니다. 자신이 자유를 누릴 참 자유인임을 아는 사람은 드물다. 자유(Free)와 자유함(freedom)은 다르다. 영혼 깊숙이 자유함을 누리려면 수많은 아픔,희생, 절제,겸허함을 배운 뒤에 깨달아야 한다. 대학가의 젊은이들이 “우울하다”고 말하는 것을 그냥 넘겨들어서는 안된다. 그들은 아직 세상을 배우기엔 어리고 서툴다. 먼저 사랑으로 보듬고 마음을 열수있는 대화의 광장, 빈들에 나가 들풀이나 벌레 소리를 듣는 한가한 시간이 필요하다. 그러나 어디 그럴 시간이 있는가. 쫓기고 뛰고 달려도 경쟁에서 이기지 못한다는 강박관념, 정신적 스트레스에서 해방될 시간이 없다. 전문인이 되려고 칼날 위를 걷는 아픔을 견디는 곳이 대학이다. 명문대일수록 지나치게 경쟁이 심하다고 한다. 요즘 몇년새 하버드에서도 자살사건이 부쩍 늘고있다고 한다.

대학(大學)은 전문분야 학문을 가르치기 전에 참된 인간이 되는 길을 먼저 가르쳐야 한다. 현대 문명에 족쇄가 채워진 현실의 교육에서 시달린 젊음을 생각하면 가슴 시리다. 이제 대학이 새로운 학문의 길을 찾아가는 방법을 모색해야 할 때이다. 기계를 따라서 사는 우리 아이들의 ‘마음과 머리 사이’는 너무 멀고, 그 골은 깊기만하다. 물으면 금방 답이 나오는 기계에 지나치게 의존하다보니, 참을성이 없고, 격한 분노에 휩싸이기 쉽다. 학문에 깊은 정수를 잃은 채, 기계의 부품을 만드는 과정에 집착할 뿐이다

영혼 깊숙이 자아가 깨어있을 때, 학문도 지혜도 스며든다. 스트레스와 경쟁에 허우적거리는 대학가 젊은이들이 자살을 많이 하는 이유는, 스스로 자신감을 잃고 영혼 속에 맑은 기(Flow)가 막혔기 때문이다.

살아남은 자는 빠른 성공의 길을 찾느라 노력하지만, 학문의 길이나 사람됨은 한 생의 작업이다. 인류가 더 나은 내일을 위해 대학교육을 받느라 오히려 길을 잃고 헤매지 않는지 생각해볼 일이다. ‘지나침은 모자람만 못하다’는 진리는 오늘의 경쟁사회, 자본주의 현실을 직시한 철학이 아닐까 싶다.

산다는 것은 우리 모두 더불어 따스한 가슴으로 행복과 평화를 찾아가는 길이다. 교육 또한 그 길을 찾아가는 인생길의 과정이다. 어른들이 잘못 살아온 길을 우리 아이들이 다시 걷지않도록 해야 한다. 이젠 종교, 정치,대학가가 인류 평화와 사랑으로 하나됨을 위하여 꿈과 새길을 찾아나서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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