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별 뉴스를 확인하세요.

많이 본 뉴스

광고닫기

기사공유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톡
  • 카카오스토리
  • 네이버
  • 공유

[박경자칼럼] 동양의 석학, 임어당

내가 책장이 다 헤어지도록 매년 읽는 책이 있다. 임어당의 ‘생활의 발견’이다. 하도 많이 읽어 책장이 다 헤어져, 한국 다녀오는 길에 다시 새 책을 사서 보관할 정도로 사랑하는 책이다. 언제 어느 페이지를 펴보아도 그 풍성한 해학과 풍자, 인간미가 넘친다. 그의 책에서 나는 책이 아닌 인간을 읽는다 . 나는 누가 뭐라해도 임어당을 ‘동양의 석학’이라고 생각한다.
100년전 태어난 그는 미국 하버드대를 졸업하고, 독일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은 뛰어난 석학이다.그러나 그의 글에는 시골 목동이 목장을 어슬렁 거리는 서민의 향기와 인간미가 넘친다. 세상이 아무리 기계문명에 물들어 사람의 향기를 잃어도, 사람이 그리운 세상이다. 영문학을 전공한 그는 셰익스피어를 읽으면서 그 난해한 문장에 한마디 ‘목동아, 너는 철학이라도 갖고있느냐’라고 날카로운 정수를 찌른다.
사실 영문학을 전공한 나 자신도 대학 시절 가장 힘든 과목이 셰익스피어였다. 지금에야 다소 이해가 되지만 철없는 소녀 시절, 문학의 깊은 정수를 이해할수 없는 그 시절, 철학보다는 인생 자체를 읽고 싶었다. 훌륭한 문예작품은 문장이나 기법이 없다고 말한다. 많은 문학 작품들이 지나치게 과장된 문체나 성공에 바탕을 둔다.
‘문체는 그 사람이라는 말이 있다. 아무리 고상한 문체로 글을 쓴 뛰어난 문장가라도, 그 사람의 인간미, 감성의 섬세함, 이해의 세밀함, 사람 냄새나는 인간의 매력이 있는냐에 문학의 생명이 달려있다. 진정한 독서를 즐기려면, 하늘에 구름이 떠있을 때 구름을 읽고, 바람이 흐르면 바람을 읽어야 한다. 진정한 대가는 역사책을 읽을때, 오자를 개의치 않는다. 여행자가 등산할 때 험한 길을 개의치 않고, 설경을 구경하는데 썩은 교량을 개의치 않고, 전원생활을 즐기는자는 촌뜨기를 개의치 않음과 같다고 말한다. 나같이 부족한 사람은 글을 보내놓고 보면 오자가 틀린데가 한두군데가 아니어서 독자들께 미안한 마음뿐이다. 몇년전 필자가 ‘지리산 나무꾼’이란 책을 펴낼 때도 땅속 깊은데로 숨고싶은 마음이었다. 그러나 이제 세상으로 나간 그 책은 나의 글이 아니라, 독자의 책이라 생각하고 잊고 살아간다.
요즘 장영희 교수의 책 ‘생일’을 읽으면서 ‘사랑이 내게 온날 나는 처음 태어났읍니다’라는 서문을 일고 눈물이 핑 돌았다. 이미 고인이 된 장 교수가 살아서 활짝 웃는 모습으로 내게 다가와 말한다.
‘내겐 당신이 있습니다. 내 부족함을 채워주는 사람, 당신의 사랑이 나를 일으킵니다. 내게 용기, 위로, 소망을 주는 당신, 내가 나를 버려도 나를 포기하지 않는 당신, 내가 전생에 무슨 덕을 쌓았는지, 나는 당신과 함께할 자격이 없는데 내옆에 당신을 두신 신께 감사합니다. 내가 사랑하는 이가 이 세상에 존재한다는것, 그것이 내 생애에 가장 큰 힘입니다.’
장교수의 ‘생일’을 읽으면서 ‘왜 좀더 살지, 왜 그리 일찍 가버렸나…’ 싶었다.. 아름다운 그 사람이 오늘은 보고 싶고, 그리워서 가슴이 울컥했다. 대학 시절 문학을 한답시고 영시를 끼고 눈쌓인 청파 언덕을 오르내리던 소녀 시절이 오늘은 다시 그리워진다. 문학이란 가슴에 새겨진 영혼의 시인가. 내가 목이 마른 날, 길이 보이지 않는 날은 시가 쓰고 싶어진다. 내 영혼의 목마름으로 붓을 잡는다.
지금도 내가 부족한 글을 쓰는 보이지않는 힘은 대학시절 영문학 강의 시간에 배운 그 주옥같은 시들이다. 나의 단단한 마음을 부수고 아픔과 기쁨, 철없는 소녀처럼 무색인 내 인생에 무지개빛 색깔을 수놓은 것은 젊은 날의 문학의 힘이라고 생각한다. 시인은 바람에도 색깔을 칠하는 사람이라 말한다. 바람이 하늘에 뜨면 구름을, 바다에서는 파도를 일으키는 신들린 붓이다. 무색인 내인생에 문학이란 무명의 색채는 삶이 외로울때나, 기쁠때나 가슴 깊은곳에서는 무지개가 뜬다. 어차피 인생이 뜬 구름이라면 험한 세상 너무 괴로워 하지말고 살자. 더러는 자연 처럼, 바람 처럼 살기로 한다.


살아갈수록 인문학이 인생을 꿋꿋하게 살아가는데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느낀다. 인생은 한번쯤 살아볼만한 축복이요. 소박한 생활, 자연을 사랑하며 사는 인생을 날마다 배운다. 누구나 목마른 인생에 영혼 깊숙이 스며드는 사랑만 하며 살아도 인생 반절은 성공한 셈이다. ‘생일’의 선물은 누구나 받고 태어나지만, 우린 사랑 안에서 매일 태어나는 사람들이다. 모든 것을 다 소유해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사랑 장’이 얼마나 소중한지…. 사랑은 내 가슴 깊은 영혼의 언어요, 생명의 원천이다. 생전에 한번도 만난적 없는 장영희 교수의 아름다운 마음, 사랑이 오늘은 가슴 깊이 스며든다.
인연이 아니면 서로 만남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는데, 책속에서 동양의 석학 임어당을 만나면서 그의 사상, 문학, 철학이 나의 소중한 삶의 지침이 되고 문체나 사상에도 자유함을 얻는다. 아무것에도 매임이 없는 낭만과 자유함, 변덕스런 멋, 난폭함까지도 예술의 혼이 살아 숨쉰다. 동양 철학의 소박함과 은둔의 미, 중용사상은 동서의 벽을 뛰어넘는 깊디깊은 인간애요, 세기의 철학이다. 내가 만난 임어당의 인간적인 매력이 세기를 흘러도 변하지않는 깊은 지혜의 샘물되어 흐른다.
사실 시인이나 학자들은 세상 살아가는데 돈안되는 별볼일 없는 부류의 사람들이었다. ‘강호객인 동파 거사, 소동파같은 사람들처럼 참된 한적한 생활은 부자의 것이 아니다. 인생을 오직 부귀영화만을 쫓지 않는다면, 인생의 향기, 한적한 삶은 자연속 어디에나 숨어산다. 그 사람들은 ‘생자필멸’ 인생은 춘몽이 끝나 흔적없음을 미리 본 사람들이다.
오늘은 가을의 문턱에서 옛 어른들의 삶의 향기에 젖어 솔숲 사이를 거닐으면서 인생의 향기에 젖어본다. 오늘은 사랑으로 다시 태어난 나의 생일, 내 남은 인생의 첫날 아닌가.


Log in to Twitter or Facebook account to connect
with the Korea JoongAng Daily
help-image Social comment?
lock icon

To write comments, please log in to one of the accounts.

Standards Board Policy (0/250자)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