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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옥순 칼럼] 친구야, 네 삶이 흐르게 해봐

오랜만에 지인들을 만났다. 삭막한 이민의 여정, 일상에 파묻혀 살다 보니 함께 차 한잔 나누기도 쉽지 않다. 더는 기대고 비빌 곳도 없는 낯선 땅에서 아이들 뒷바라지 하랴, 생업에 충실하랴, 그나마 조금 낙낙했던 품도, 여유도, 이웃 간의 정도 점점 잃어가고 있다. 그래선지 너도나도 아프단다. 세상은 빠르게 변화하고 시간은 휙휙 지나가고 아이들은 숨 가쁘게 커간다. 그 가운데 우리는 시나브로 늙고 있다. 때로는 주렁주렁 매단 의무와 책임이 버거워 현실에서 멀리 도망치고 싶다. 그렇다고 도망칠 곳도 숨을 곳도 없는 우리! 인생이 꽃길이 아니라는 사실을 이미 간파한지라 오늘도 고통과 시련을 달게 씹으며 뚜벅뚜벅 걷고 있는 게 아니던가? 휘몰아치는 비바람 속에서 어지러이 흔들리지 않으려면 삶이 흐르도록 물줄기를 내야 하리니. 자신만의 꿈, 환상, 내면의 세계가 있어야 계속 갈 수 있으리라.

어렵사리 시간을 낸 한 친구가 말문을 열었다. 남편과 함께 같은 일을 하는 그녀는 최근 들어 자주 하소연을 한다. 일상에서 남편이 자주 시비를 걸어온단다. 주어진 일을 잘 해내도 성에 차지 않은 듯 불퉁거리며 핀잔을 주고, 타박해댄다며 울먹였다. 기실 부부가 함께 같은 일을 하다 보면 자주 싸운다는 소리를 종종 듣는다. 수긍이 간다. 울타리 안에서 늘 보는 얼굴을 바라보며 반복되는 일을 하다 보면 마음속에 공자님이 들어앉아 있어도 짜증날 일이다. 세상은 넓고 사람은 많다지만 무슨 소용이랴. 이민 생활, 내 영역이라고 해봐야 집과 일터, 몇몇 사람 더 만날 수 있는 교회가 전부 아닌가? 그 안에서 고물고물하다 보니 쓰나미처럼 밀려드는 스트레스를 감당하지 못하고 막역한 이에게 화살을 쏘아대는 것이다. 당장 내가 살아야 하니까, 내 영혼을 무겁게 짓누르는 감정을 정화해야 하니까 살을 비비고 사는 옆지기에게 속사포를 날리는 것이다. 세상에서 그 누구보다 서로를 가장 잘 알고, 가장 편안하고도 막역한 벗이 부부니까.

그만한 남편 없다고, 생트집을 잡는 것도 당신을 사랑하는 지극한 관심의 발로라고 죄다 한마디씩 친구에게 건넸다. ‘행복한 비명’ 그만 지르라고 핀잔을 주던 나는 친구의 속사포가 남의 일 같지 않았다. 나도 남편과 함께 일해야 하는 처지니까. 옆에서 남편의 업을 살짝살짝 보조해주는 입장이라지만 같은 공간에서 오랜 시간 함께 있다 보면 낯선 모습들이 눈에 들어올 테고 이성보다 힘센 감정은 티격태격 충돌을 부추길 게 뻔하다. 아, 그래서 나만을 위한 무엇인가가 절실히 필요하다. 남편의 시비도, 환경이 만드는 어지간한 태클도 너끈히 받아칠 수 있는 비밀병기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번진다. 살면서 내가 가장 하고 싶은 것, 절체절명의 밥 앞에서 가슴 저변에 밀쳐놓았던 꿈을 꺼내 기운을 분산하는 것이 바로 내 삶을 흐르게 할 물줄기가 아닐까?

노래를 잘하는 친구가 있다. 그녀는 밥을 위해 일하는 생활인이다. 그런 그녀는 촌각을 다투는 일상 속에서도 갈피짬을 내어 지극정성으로 노래를 부른다. 노래를 부른다기 보다 아릿한 곡조 위에 자신의 인생을 실어 생의 우여곡절을 치열하게 녹여내고 주어진 생에 감사하며 햇빛처럼 즐겁게 산다. 그래서일까? 신산한 인생길에서도 그녀의 얼굴은 늘 맑고 환하다. 그렇다. 삶을 흐르게 하는 것은 거창한 그 무엇이 아니다. 노래도 좋고 어릴 적 피아노를 치고 싶었다면 피아노를 배우는 것도 좋다. 조금의 소질이 있다면 그림도 좋고 운동도, 사진도, 글쓰기도 어느 것이어도 상관없다. 곡절 많은 일상에서 소질이 있다면 그림도 좋고 운동도, 사진도, 글쓰기도 어느 것이어도 상관없다. 곡절 많은 일상에서 갈피짬을 내어 잠시 지친 영혼을 뉘여 놓고 얼어붙은 마음을 헤시시 풀 수 있는 것이라면 그만이다.



책을 읽다가 가슴에 내린 구절을 아픈 지기들과 나누고 싶다.

“하는 일마다 잘되고 즐겁게 일하고 잘 노는 사람을 보면 부럽다 못해 샘이 나기까지 한다. 그 사람이 단지 운이 좋은 걸까? 그는 의식적으로 혹은 무의식적으로 이렇게 하고 있다. 세상에 자신을 활짝 열어 놓고 세상이 자신을 통해 흐르도록 하는 것이다. 나는 어떠한가? 막혀있는가? 흐르고 있는가.”

나는 날마다 좋아지고 있다 ?샥티거웨인, 로럴킹-

“친구야! 삶이 흐르게 할 자신만의 물줄기가 있어야 계속 갈 수 있어. 식어가는 열정에 다시 기름을 붓고 밀쳐둔 꿈을 꺼내 삶이 흐르게 하자. 매력넘치는 인생을 살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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